그야말로 백만년만에 남기는 회고.
원래는 2024년 말에 Goodbye 2024 회고도 남기고 싶었고,
이직 1개월차에도 이것저것 느낀 게 많아 회고를 남기고 싶었으나...
안 쓰던 블로그에 손을 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늦어졌다.
아무튼 지금이라도 내 과거를 반추해보고자 밀린 회고를 시작해본다.
왜 이직하셨나요?
이직하였다고 하면 가장 궁금한 주제일텐데, 나의 경우 외적인 이유와 내적인 이유 두 가지가 있었다.
일단 외적인 이유이자 결정적인 이유는 직무 변경의 위기 때문이었다.
작년 연말 즈음, 내가 몸담고 있던 본부가 회사 내/외부 사정으로 통폐합되고, 다루는 핵심 서비스가 완전히 바뀔 거라는 예고가 있었다. 그리고 변경되는 서비스는 더 이상 웹 서비스가 아니라 SAP에 국한된 서비스였다.
즉, 프론트엔드 개발자에서 SAP 개발자로 직무가 변경된다는 예고였다.
사실, 프론트엔드 개발자라는 직군에 큰 집착적인 의의를 두고 있지는 않다. 사실상 이전 회사까지도 풀스택에 가깝게 근무해왔고(서버쪽에 전문성이 있을 거란 자신은 없지만) 나 자신은 웹개발은 물론 AI나 앱 개발 쪽에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SAP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SAP 도메인은 폐쇄적이다. 회사가 아닌 개인은 SAP라는 서비스에 접근하기도 힘들며, SAP 개발자는 회사를 벗어나 개인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나만의 아이템을 만들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SAP 개발자에게 선택지는 프리로 근무하거나, 회사에 속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론트엔드 개발자의 길을 밟은 사람인지라... 그 종속성이 내겐 크리티컬했다.
나는 회사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직군으로 내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었고, 따라서 그 예고를 들은 순간부터 내 목표는 조직개편이 되기 전(2024년)에 이직을 하는 거였다.
운이 좋게도 성공할 수 있었다.
내적인 이유로는, 더 유연하고 기민한 팀에서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이전 회사는 업력이 25년이 넘은 중소기업이었고, IT 도메인이긴 하나 IT 스타트업에게 흔히 기대되는 기민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느낌은 없었다. 의사결정도 수직적인 면이 강했고, 자유롭게 일 대화가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회사 생활의 대부분은 조용한 사무실 환경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보냈다. 우리 팀은 특히나 협업보다 각자가 각자에게 주어진 서로 다른 임무를 한다는 성격이 강했고, 그래서 옆자리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다 보니, 좀 많이 재미가 없었다. 나는 좀 더 서비스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하고 여러 직군의 사람들과 의논해 가면서 주도적으로 일해 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팀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 있었더라면 팀 문화를 바꿀 의지가 생겼을 테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어서... 맞지 않는 사람이 나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 정말 다른 직군의 사람과 협업이 해보고 싶었다. 2년차인데 마땅한 협업경험이 없다는 게... 😭
이런 분위기임에도... 이전 회사 팀장님께서는 정말 나를 많이 생각해주셨고, 나의 의지를 많이 존중해주셨다.
내 의견을 많이 들어주려고 하셨고, 일하면서 신뢰받고 있다고 많이 느꼈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새 회사는 어떤 곳인가요?
이전 회사와 거의 반대축에 있는 회사가 아닐까. 업력은 1년 남짓이고, 인원은 6명 가량이고, 공유 오피스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이다.
사실 최종합격 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 많은 사람이 말렸었다. 안정적인 이전 회사에 비교했을 때 위험도가 엄청나게 도사린 환경이니까...
실제로 많이 고민했지만... 내가 이직하는 이유를 고려해 봤을 때,
새 회사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전부 충족해줄 수 있는 곳이었다. (고정된 프론트엔드 업무 / 기민한 스타트업 환경 / 기획자+백엔드와의 협업)
그리고 도메인이 내가 관심있는 부분이었다. 내 주변인들이 많이 속해 있는 도메인이기도 했고.
또, 업무 설명을 들었을 때나 회사 아이템을 봤을 때 여러모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직을 결정했다.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3개월 다녀보니 어떤가요?
근무한 첫날,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서비스에 대해 이것저것 의논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여기 제대로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으로 업무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원한 문화가 자리잡아 있는 곳이구나 싶었다.
확실히 스타트업이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곳이다. 팀장님도 위계가 없으신 편이고, 수직적인 조직 특유의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우리 회사에서는 각 직군의 사람들이 한명씩 존재한다. 기획자 겸 디자이너분 1명, 백엔드 개발자 1명, 유니티 개발자 1명, 프론트엔드 개발자인 나 1명. 실무자는 이 인원이 전부다.
따라서, 내가 빵꾸를 내면 바로 눈에 보이는 구조다. 모든 웹 프론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 묵직한 권한이 나한테 주어진다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부족한 실력을 바로 마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업무를 칠 때 강점과 약점이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강점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풀릴 때까지 파고드는 집념 내지 끈기가 있다. 어떤 문제가 안 풀리면 풀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개발자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편이고, 그래서 디버깅을 좀 잘하는 편이라고 본다.
약점은, 보다 중요도가 낮은 일에도 그 끈기가 발동한다. 예를 들면 뭐 어떤 모달창이 절대로 정가운데에 오지 않는다거나... 잘 작동하는 컴포넌트 코드를 뜯어보니 너무 더럽다거나... 뭐 이런 식의 사소하거나 구현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일에 너무 쉽게 파고들어서 정신차려 보면 4시간이 지나 있는 그런 일이 많다. 특히 리팩토링 욕구가 너무 강하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결과적으로 구현 퀄리티는 좋을지라도 속도가 느린 편이다. 그런데 이걸 이 회사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다.
일한 지 1개월쯤 됐을까? 팀장님이 구현속도 문제로 개인면담을 신청하셨다. 서로 약간 날이 선 대화가 오갔고... 나는 3일 내에 특정 UI를 완성하라는 테스트를 받았다.
내 기준에선 도저히 '완성'할 수 없는 UI라 걱정되는 와중에 구현을 쳐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중요도를 매겨서 구현 디테일에 속하는 부분과 뼈대에 속하는 부분을 나눠서 구현하게 되었다.
3일 후, 내 기준 '완성'은 아니었지만(디테일을 전부 날렸기에) 뼈대는 세워져 있는 UI를 보고 팀장님이 '이제 속도가 올라왔다' 평가하셨고...
그때 비로소 '아 이렇게 일을 해야 되는구나' 하는 감을 얻었다.
그 날부터 개인 투두리스트를 만들어서 기획에서 구현하지 못한 디테일은 TODO에 넣어 두고 핵심기능을 먼저 처리하는 식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그 이후로 속도 피드백을 듣는 일은 없았다.
이전 회사에서나, 첫 회사에서나, 일하면서 그렇게 큰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잘해서(ㅎ) 그런 줄 알았지만,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만 부정적 피드백을 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고, 괜히 밉보일 일을 하느니 그냥 말을 삼키는 리더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 자신이 없고...
다행히도 이번 팀장님은 꽤 직설적인 타입의 사람이시고, 기꺼이 피드백을 해주신 덕에 좀 더 빠릿하게 일하는 내가 된 것 같다.
(멘탈 데미지가 아예 없었다곤 못하겠지만... 다행히 이후에 잘 풀어주셨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저것뿐이지만,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이제야 진정으로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이전까진 다소 잡부였던 느낌인지라...)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정말 만족 중이다.
끝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자주 회고글을 남길 수 있기를... (아니면 개발글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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